학교에 가는 내 신세가 너무 처량했다. 그날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개봉하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그날 나는 학교에 가야 했다.
어디선가 스포를 보고 온 친구가 칠판에 자꾸 누가 죽었다고 그림을 그려놓길래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로 도망 다녔다.
그땐 그랬다. 얼른 학교 대신 회사에 가서 돈을 벌고 싶었다.
매일 6시에 일어나서, 9시부터 4시까지 수업을 듣고, 왕복 통학 네 시간까지. 그때 나한테 학교는 족쇄였다.
하고 싶은 것에 방해만 되는 족쇄.
한 달 뒤면 수능 시즌, 두 달 뒤면 나는 어느새 스물둘.
영화표 정도는 비싸다고 투덜대지 않고 용산 아이맥스도 쌉가능
마음만 먹으면 평일 오전에도 몇 편이고 볼 수 있는 내가 되었지만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지금 엔드게임보다 백 배 더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그 족쇄 같던 학교보다는 재미없을 거 같아.
그땐 왜 몰랐지? 아쉽다.
어떻게 하면 더, 그때만큼 재미있을 수 있을까?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고등학생 때 같은 재미는 더 이상 없겠지만.
지금의 재미는 내가 만든 물건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걸 보고, 그래서 나를 좀 더 근사하게 봐주고.
덕분에 좋은 사람들이 옆에 생기고, 아무 의미 없는 농담도 하면서 장난치는 거. 그런 게 요즘의 재미인 거 같다.
내가 짠 코드가 GitHub에서 스타 수가 올라가고, 다운로드 수가 올라가고.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렇게 계속 나아가서,
멋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한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물건에 내가 만들었다고 적혀있었으면 한다.
글을 적으면서
근데 이 꿈이 언제 생겼지?
생각해 보니,
이 꿈도 고등학생 때 만들어진 꿈이잖아?
그땐 족쇄라고 느꼈던,
그러면서도 마냥 재밌었던 그때가 다 지나고 나니,
조금은 아쉽기도, 조금은 그립기도 하지만
덕분에 지금은, 지금 내가 느끼는 재미가 뭔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사실은,
꽤 아쉽기도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그 감정들마저 내 기억들을 완성시키고
지금의 나를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어벤져스는 재미없지만, 어벤져스만큼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무언가를 만들러 가야지.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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