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주위를 둘러보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야! n학년이면 이런 건 꼭 해야지!
n학년 준비하려면 이건 필수야!
내신 준비는 이렇게 챙겨야지!
야 대학교는 무조건 가야지!
그런 이야기를 하던 어른들도 있었고, 선생님들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근데.. 그런 소리들이 왜 이렇게 싫었을까?
꼭 필수로 해야 한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
가끔 한두 번은 들을 수 있지만, 저런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많이 하는 친구들과는 뭔가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너무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아 물론, 저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항상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렇진 못했지만 ㅋㅋㅋㅋ
필수로 해야된다는 거 다 안 하고,
필수로 가야 한다는 대학교도 안 가고,
그렇게 개발자가 되어보니, 비슷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백엔드 개발자는 자바지~
취업하려면 이 기술은 필수로 알아야 해!
저렇게 일하면 재밌나? 재미가 없잖아. 일을 재밌게 해야지.
그러다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옆에서 일하게 됐다.
그 기술로는 어차피 취업 못해. 일자리 없어.
그냥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그렇게 힘 줄 필요 없어~
아니, 난 정말 코드 짜는 게 재밌어서 개발자를 시작한 건데, 여전히 재밌는데.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그 답답한 기분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아 알겠는데! 그렇게 살면 재미가 없잖아!
이 정도에서 멈췄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저렇게 말했던 사람이
자꾸 했던 일들을 기만에 가깝게 포장하려고 하고, 잘못된 지식을 계속 맞다고 우기고, 실수에도 다른 사람 탓에, 그러면서 본인이 잘한다고 어필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보며,
괜히 무의식에
개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더 이상 그 사람과 일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 그 팀을 나오게 되었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많은 일들을 하며 너무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가끔 잘 안 풀리면 감정적으로 속상할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게 연료로 쓰여서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고.
회사를 다닌 지 3달 만에 월별 동료평가에서 (공동이지만) 두달 연속 MVP로 뽑혀보기도 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한 번도 못 받아본 성적우수상을 받으면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그러다 돌이켜보니 괜히 원망이 들었다.
나 지금 너무 재밌고 행복한데. 그리고 꽤 잘하고 있는데!
필수라고 할 만큼 강하게 표현할 건 아니었지 않나? 괜히 신경 썼던 거 같아.
저런 생각에만 빠져 살면 다들 재미없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일 거야
약간의 오만한 마음이 자라나려던 차, 회식자리에서 지금 회사의 팀원 중 한 분이, 일 할 때 별 감정이 쓰이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막 재미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 고통스럽지도 않다고.
근데 돌이켜보니 그분이 항상 일정한 퀄리티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저런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확실히, 나는 재미있을 때보다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일을 할 때 속도랑 퀄리티가 확 낮아지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개발자면 당연히 개발을 좋아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내 오랜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없기도 하고, 꼭 좋아해야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중요한 건 어떤 태도로 어떻게 일하느냐였던 건데, 괜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불량한 것과 내 일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예 다른 건데 묶어서 생각하고 있었고. 반성합니다 🙏
이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외치며 달렸던, 내 옆을 지나간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한테는 실제로 필수인 게 맞았고, 그냥, 나한테는 필수가 아니었던 거였고. 각자의 정답이 있는 거니까.
하라는 거는 전부 안 하고 살아보니, 오히려 하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험지와는 달리 복수정답이 넘치는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나의 정답이 무엇인지 찾아 진심으로 멋있게 보여주는게 제일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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